경상남도

통영 1

아리1 2018. 6. 30. 07:27

2018. 6/1일. 금. 맑으나 더움. 통영. 처음<2014. 7/12일>에는 고성군을 거쳐 통영시 광도면으로 들어갔으나 이번엔 새거제대교를 건너 용남면으로 감. 거제도와 다리 하나 사이인데도 바닷물 깨끗하기는 하늘과 땅 차이 날 정도로 달랐다. <번에 가볼 섬은 연대-만지섬, 욕지섬, 한산섬>

 

 

 

새거제대교를 건너서 통영시 동쪽 용남면으로

 

 

 

10시 20분. 새거제대교 

 

 

 

새거제대교 북쪽 방면. 아름답습니다.

 

 

 

 

 

 

 

 

 

 

 

 

섬마을. 저기엔 누가 살고 있는지. 정말 좋겠다.

 

 

 

 

 

 

 

 

 

 

 

 

 

 

 

통영시 용남면. 다리를 건너 오른쪽 밑으로 내려가서 해간연육교를 조금 지난 곳에서 돌아나옴. 

위의 관광 지도에는 건널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가서 보니 아니었음. 파란 가위 표시된 곳.  

 

 

 

새거제대교 밑으로

 

 

 

저기 보이는 다리는 옛 거제대교

 

 

 

마늘. 이렇게 말리는 모습을 보니 마치 우리네 인생을 말하는 듯하다.

 

 

 

붉은색 다리가 새거제대교 <이 부근이 견내량>

 

 

 

정말로 걸어 다니기 좋은 길입니다.

 

 

 

미역. 나는 어디 즈음에 서 있으면 될거나.

 

 

 

연기 어촌마을

 

 

 

11시 55분. 해간 연육교. 건너 편은 해간도. 이곳에서 오른족으로 얼마를 더 가다가 길이 없어 다시 돌아 나옴.

 

 

 

해간다리

 

 

 

 

 

 

 

 

 

 

 

 

해간도 부근에서 충무교<충무 다리를 기준으로 북을 북충무 또는 , 미륵도인 남을 남충무 또는 남이라 하겠음>를 지나가는 버스를 탐. 북은 2014년에 들렀기 때문에 바로 남으로 감.

 

1. 통영운하; 북 도천동과 남 미수동, 봉평동 사이의 운하. 길이는 해상 준설 구간 1,170미터를 포함 1,420미터, 너비 42-55미터, 간조 수심 3.1미터. 1928년 5월 착공 4년 6개월 뒤인 1932년 11월 20일 개통.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에 있으며, 본래 이 좁은 해협은 가느다란 사취(砂嘴 : 바다 가운데로 길게 뻗어나간 모래톱)가 발달하여 반도와 섬이 거의 연결되어 있었다. 임진왜란 때의 한산대첩(閑山大捷)에서 이순신(李舜臣)에게 쫓긴 왜선들이 이곳으로 도망쳐 들어와 배가 갈 수 없으므로 퇴로가 막히자 땅을 파헤치고 물길을 뚫고 도망쳤다 하여 이곳을 ‘판데목’이라고도 부르며, 이때 수많은 왜군이 죽었으므로 ‘송장목’이라고도 한다. <다음 백과에서> 

 

2. 해저 굴; 북 당동과 남 미수동 사이의 바다 밑 굴로 위의 운하 밑을 다시 파내어 해저 굴을 만들었다 함. 길이 461미터, 너비 5미터, 높이 3.5미터. 1927년 5월 시작 1932년 12월까지 5년 7개월이나 걸린 큰 공사. <다음 백과에서>  일제강점기의 야마구치 통영 군수는 이를 기리기 위해 해저터널 공사에 착수했다. 장렬하게 전사한 일본군의 영령 위로 사람들이 다닐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해저터널 공사는 양쪽 바닷물을 막는 물막이 공사를 먼저 하고 노출된 해저면을 다지는 바닥굴착 공사로 이어졌다. 그 다음 철근콘크리트로 터널을 만들고 토사로 되메우기를 한 결과 터널과 운하가 동시에 생겨났다. 당시 기술로는 쉽지않은 대역사였다. 1932년 11월 20일 개통과 함께 '통영 태합굴(太閤堀) 해저도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태합(太閤)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존칭. 그러나 통영 사람들은 왜군들이 스스로 무덤을 판 곳이라 해서 '판데굴' '착량굴' 등으로 부르다 해방 이후에는 '해저터널'이라 명명했다. <다음 국민일보. 근대 문화 유산을 찾아서>

 

3. 통영운하가 있는 곳의 정확한 이름은 착량이다. 착량(窄梁, 좁을 착, 노루목)은 강이나 바다의 폭이 좁은 여울을 이른다. 통영의 착량(鑿梁, 뚫을 착, 판데목)은 뚫어서 만든 바다의 폭이 좁은 여울이라는 의미이다. 현재 통영에서는 후자를 의미를 받아들여 판데목(판도, 굴량)으로 부른다. 지명에서 량을 사용하는 경우는 통영 착량 외에 경남의 노량, 견내량, 칠천량, 사량, 진도의 명량, 강화도의 착량 등이 있다. 량은 좁은 물목을 지칭하는 단어로 가까운 곳에 자리한 바닷가 육지와 섬 사이, 또는 섬과 섬 사이를 이르는 말이다. <네이버 블로그>

 

-운하와 바다 밑 굴 만든 시기는 왜의 강점기. 누구를 무엇을 위해 운하와 해저 굴을 만들었는지 또한 거기에 피와 땀을 흘린 사람은 누구인지.

 

-해방이 되었어도 판데굴이라 하지 않고 해저터널? 분명한 역사의 퇴보이자 친왜 행위다. 하루빨리 판데굴로 다시 고치길 바랍니다.

 

 

 1.통영교 2.충무교 3.해저굴<2014년 지나감> 4.통영운하 5.통영여객항 6.통영유람선항<여기서는 장사도만 간다 함> 7.지나간 곳 8. 신전삼거리<신봉마을>     

   

 

 

 

 

14시 27분. 충무교<다른 말로 판데다리>. 1964년 착공 1967년 6월 완성되었는데, 연장 152m, 너비 10m, 높이 18m의 아치형 다리이다.

이 밑에는 해저터널이 있고, 이 다리 밑을 부산과 여수로 가는 여객선과 크고 작은 어선들이 드나든다. <다음 백과에서>

 

 

 

충무 다리에서 본 통영운하

 

 

 

통영교 <1994년(?)-1998년 완공. 충무운하위에 당동과 미수동을 잇고 있는 통영대교는 1998년에 개통되었다. 149m의 아치구간에는 196개의 투광등이 설치되어 밤이 되면 물 위에 투영된 아치가 럭비공 모양을 이루고 초록빛의 조명을 통해 일대는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총연장 591m, 폭 20.7m. 다음 백과에서>

어느 자료를 찾아봐도 앵무새처럼 착공일에 대한 기록은 없고 완공일만 나와 있으니.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가 보다. 관계 당국 빠른 조처 바란다.

가까스로 어느 자료를 보니 1994년으로 나와 있음.

 

 

 

충무교

 

 

 

 

 

 

어느 조선소. 멈추어버린 장비들

 

 

 

 

 

 

16시 25분. 통영 유람선 항. 여기서는 장사도만 유람한다 함. 표 파는 곳은 2층. 파란색으로 가린 곳은 온갖 상업시설 간판

 

 

 

유람선항

 

 

 

이 곳은 유람선 측과는 관계없는 듯

 

 

 

 

 

 

 

 

 

아래 붉은 다리는 해간교인 듯. 오른쪽은 거제도

 

 

 

 

 

 

 

 

 

 

 

 

 

 

 

 

 

 

 

 

 

19시 5분

 

 

 

 

 

 

20시 20분. 신전삼거리. 신봉마을<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이곳에서 하루를 마침<위의 그림 지도. 8> 내일은 왼쪽으로

 

 

 

 

 

*통영 2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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