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8일. 비가 조금씩 내림. 11시 20분에 남해읍에서 광양으로 가려 했으나 거기에서 여수로 가는 차가 자주 없다 해서 순천으로 감. 다시 여수로. 13시 30분 무렵 도착. 지난번<2014년 11월>에는 광양에서 여수로 가다가 보니 여수 첫머리에 공업단지가 있어서 먼저 그리로 가리라 마음먹고 그곳 시내버스 정류소에서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리로 가는 버스가 있다 함. 한 시간여를 기다려도 오지를 않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택시로 가는 수밖에 없다나. 그래서 점심을 먹은 뒤 15시 45분 향일암으로 감. 16시 40분 도착해서 가까스로 암자를 둘러봄. 4년 앞에도 거기까지는 갔으나 밤이라서. 돌아 나와서 내일 금오도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고개 너머에 있는 신기항으로 감. 도착해서 나루터가 있는 마을로 가려 했으나 비와 강풍에 움직일 수 없었음. 거기에다 밤은 어두운데. 버스 정류소에서 잠시 피하려 했으나 안쪽까지 몰아 처서 무릅쓰고 마을로 갔으나 낚시하러 온 사람들로 잠자리가 없었음. 할 수 없어 다른 정류소를 찾아가니 그나마. 거의 뜬눈으로 지새움. 물론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큰 문제 거리가 되지 않지만.
1.여수시 2.여수시 돌산섬 3.향일암 4.신기항 5.금오도 6.백야도<금오도에서 나올 때는 백야도로> 7.여수시 화양면
16시 50분 금오산 향일암(向日庵)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향일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644년(선덕여왕 13) 원효대사(元曉)가 창건하여 원통암(圓通庵)이라 하였으며, 958년(고려 광종 9)에 윤필(輪弼)이 중창한 뒤 금오암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승군의 본거지로 사용되었으며, 1849년(헌종 13) 무렵에 현 위치로 자리를 옮기고 책륙암(冊六庵)이라 하였다가 근대에 이르러 경봉(鏡峰)이 절 뒷산에 있는 바위가 거북의 등처럼 생겼다 하여 영구암(靈龜庵)이라 하였다.
향일암으로 개칭한 것은 최근이며, 이곳에서 볼 수 있는 해 뜨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25년최칠룡(崔七龍) 주지가 산신각·취성루(就成樓) 등을 지었고, 1961년에는 박영주(朴永柱) 주지가 법당과 여러 전각을 중수하였다. 1970년 박천수(朴千壽) 주지가 취성루를 개수하였고, 1984년에 종견(宗見)이 칠성각과 종각을 중창하였다. 이어서 1986년에 대웅전을, 1987년에 삼성각을, 1990년에 용왕전을, 1991년에 관음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해서 관음전·용궁전(龍宮殿)·삼성각·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해수관음기도도량으로 꼽힌다. <다음백과에서>
2009년 12월20일 0시20분쯤 향일암(向日庵·전남도 문화재자료 40호)에서 화재가 발생해 사찰 건물 8동 가운데 대웅전, 종무실, 종각 등 3동이 전소됐다. 이 불은 3시간 정도 계속됐으며 건물 3동 외에도 대웅전 안에 있던 청동불상·탱화 등 상당수 문화재가 소실됐다. <영남일보에서>
등용문
향일암 올라가면서
아래 튀어나온 곳은 군부대
불이문
-불이(不二)란 뜻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세속과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며, 선악(善惡), 유무(有無), 깨끗함과 더러움, 등등 상대적 개념에 대한 모든 대상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불이사상(不二思想) 속에 담겨진 불교의 진리는 매우 미묘한 법문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겠다. 불이(不二)란 둘이 아니고 나누어지지 않았으며, 다르지 않다는 말로 일단 정리할 수 있다. 하나라는 말은 또 하나를 보태서 둘이 되는 하나가 아니라 전체, 즉 그것 밖에 없고 상대되는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하나라는 것이다. 불이의 정확한 의미는 세간과 출세간, 즉 성과 속, 사회생활과 종교생활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불이사상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회적 자아와 종교적 자아가 상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격의 완성은 사회적 자아(세속적 자아)와 종교적 자아(초월적 자아)의 양극을 지양하는 중도의 길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사회적 자아를 확립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선 사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엄사상의 근본은 연기사상이다. 연기는 불이사상에 깔려 있는 불교의 근본 사상이기도 하다. 연기란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이 모여서 조건적으로 생성, 소멸하는 것을 말한다. 즉 모든 존재는 다른 것들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의 변화는 사회의 직접적인 조건인 개인들의 변화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회가 개인들의 집합체라는 측면에서는 개인들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에 선행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사회변혁의 여러 이론 가운데 사회의 구조적 문제보다는 그것을 만들어 내는 개인의 변혁이 우선돼야 한다. 불이와 연기 등 불교의 사상속에 녹아 있는 지혜들은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을 포교해 바람직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매우 유용한 도구다. 불경이 그토록 방대한 건 바로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다음백과에서>
-불이문. 절로 들어가는 3문(三門) 중 절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 ‘불이’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또한, 불이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불(佛)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여기를 지나면 금당(金堂)이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문을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국보 제50호인 전라남도 영암군 서면도갑사해탈문(道岬寺解脫門)과 보물 제164호인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청평사회향문(淸平寺廻向門) 등이 있다. 이밖에 양산 통도사의 불이문은 중앙에 대들보를 쓰지 않고 코끼리와 범이 서로 머리를 받쳐 이고서 지붕의 무게를 유지하고 있는 특이한 건축형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일부 사찰에서는 사천왕문 다음에 누각을 세워 이 문을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다음백과에서>
-일주문(一柱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 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다. 이 기둥 양식은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청정한 도량에 들어가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일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천왕문(天王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두 번째 문. 4천왕(天王)을 모신 곳이다. 4천왕은 수미산 중턱의 사방에 있는 4왕천(四王天)의 네 왕으로, 도리천(忉利天)의 우두머리인 제석(帝釋)을 섬기는 신들이다.
-불이문(不二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세 번째 문으로, 온갖 2분법의 분별과 대립과 언어를 떠난 부처의 경지를 상징한다. <다음백과에서>
불이문
대웅전<원통보전>
<원통보전;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사찰의 전각>
<문종성번뇌단; 종소리들이 번뇌를 끊다. 일체중생성정각; 모든 중생을 바로 깨닫게 하여 주다. '다음' 어느 글에서>
천수관음전
관음전
삼성각
17시 45분 등용문<나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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