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완도 <보길도 2-4>

아리1 2020. 1. 8. 03:06

2019. 8/2일. 금. 세연정 나와서 곡수당 낙서재로. 동천석실은 다음 회<2-5>로.

 

 

 

10/10분. 곡수당으로 가면서

 

 

 

 

 

 

저곳은 동천석실

 

 

 

곡수당 낙서재로

 

 

 

이 봉우리가 수리봉인지 격자봉인지

 

 

 

먼저 곡수당으로

곡수당에서 큰질재를 거쳐 예송리나 보옥리로 갈 수 있음

 

 

 

1.청별 2.세연정 3.곡수당 4.낙서재 5.동천석실 6.큰길재 7.예송리 8.보옥리. 지금 있는 곳은 곡수당

 

 

 

 

 

 

곡수당 서재 하연지 등이 한눈에 보임 <완도군청>

 

 

 

곡수당

             

퇴. 툇간에 놓은 마루. =툇마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곡수당

 

 

 

곡수당<왼쪽>과 서재<오런쪽> 사이를 지나는 개울. 구불구불 돌아가는, 곡수

 

 

 

곡수당

 

 

 

 

곡수당 아궁이

 

 

 

 

 

위는 곡수당 앞면 서까래 모습이고 아래는 뒤편임

 

멀리 벽과 기둥 사이로 보이는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 상연지 임. 곡수당 왼쪽

 

 

 

굴뚝

 

 

 

멀리 높게 보이는 산등성이를 지나 바위로 된 봉우리를 10월 말 다시 감. 세 번째.

그날은 청별에서 첫차로 보옥리 가서 거기서 뽀래기재에 올라 망월봉 쪽으로 가다가 세 갈래 길에서 오른쪽으로 감. 

바위 봉우리 그다음부터는 길이 없음. 왔던 길로 되돌아가느냐 아니면 길을 만들면서 내려가느냐.

힘들게 갔기에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바위 봉우리 너머로 내려감.  

 

 

 

곡수당 집안 모습

 

 

 

 

 

 

마룻대. 상량문 '단기 4340년 양 2월 8일 상량' <서기 2007년>

 

 

 

 

 

 

 

 

 

 

 

 

상연지

높이가 한길 되는 방대 위에 돌을 쌓고 허리 부분에 구멍 하나를 뚫어 돌로 된 통을 끼워 뒤에서 끌어온 물이 구멍을 통해

연못으로 쏟아지게 하고 이를 비래폭<飛來>이라 하였다. 

 

 

 

 

상연지

 

 

 

 

 

 

 

곡수당에서 본 낙서재

 

 

 

곡수당에서 셔재로 가면서 왔던 곳을 돌아다 봄. 오른쪽이 곡수당

 

 

 

서재

 

 

 

서재

 

 

 

 

서재

 

 

 

 

 

 

 

 

 

 

멀어지면서 곡수당<왼쪽>과 서재

 

 

 

하연지. 아래 글에서 석정은 정자가 아닌 돌로 만든 우물

 

하연지

 

 

 

 

낙서재  

1.낙서재 2.귀암 3.소음병 4.사당 5.전사청 6.동와. <완도군청>

 

 

 

낙서재

 

낙서재는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병풍바위 아래 위치한<위치한은 왜놈식 한자어. 있는으로> 유적지이다.

 

낙서재는 고산(孤山) 고산 윤선도가 거처하던 곳이다. 윤선도는 해남에서 병자호란으로 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산이 깊고 물이 맑아 아름다운 섬인 보길도(甫吉島)에 은거하고 정착한 그 일대를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였다. 

 
이후 보길도의 격자봉(格紫峯)에 올라가서 주산(主山)의 형국(形局)을 파악하고 그 혈맥(穴脈)이 세 차례나 꺽여 내려오는 곳에 소은병(小隱屛)바위 아래 낙서재 터를 잡았다. 풍수지리에 밝은 고산이 격자봉의 혈맥을 찾아 길지(吉地)에 낙서재 터를 잡은 것이다. 낙서재란 독서를 즐기며 학문하는 선비의 삶을 상징한다. 윤선도는 이곳에서 많은 책을 쌓아두고 독서하며 자제들을 가르쳤으며 부용동원림(芙蓉洞圓林)중에서도 낙서재 지역을 추천 주거공간(住居空間)으로 삼았다. 윤선도가 『고산유고』를 저술한 것도 이 곳이다. 또한 윤선도는 이곳에서 「어부사시사」 또한 이곳에서 쓰여졌다.


낙서재의 형국 요처가 되는 곳은 소은병과 귀암(龜岩) 그리고 뒤에 자리잡고 있는 격자봉이다. 소은병은 낙서재터의 뒤에있는 2.5m 높이의 병풍바위로. 소은(小隱)은 세속을 싫어하여 은둔해 있다는 뜻이다. 낙서재의 소은병에 부는 소슬바람을 은병청풍(隱屛淸風)이라는 부용동팔경에 꼽았다. 또 낙서재 앞뜰에 있었다는 바위가 귀암이다. 2.8m의 거북바위라고도 한다. 윤선도는 이 바위를 『고산유고』 귀암 시편에 나오는 4령(봉황 기린 용 거북)중에 하나로 꼽으면 저녁이면 귀암에 앉아 보름달을 즐겼다고 한다. <위키백과에서>

 

 

 

낙서재

어제 2번 등산길을 지나다가 만났던 공원 직원들인데 오늘은 유적들 주위에 풀을 베고 있었음. 이 무더운 날에.

 

 

 

 

방안 모습

 

 

 

 

 

집안은 사통팔달이라 할까? 사방으로 바람이 잘 통하도록 지어졌음.

 

 

 

 

 

 

 

 

 

 

 

 

 

귀암 <거북바위>

 

 

 

 

거북바위

 

 

 

 

정자와 소은병

정자. 기록에 따르면 서재옆에 정자가 있었다고 전하며 현재 건물의 형태나 규모는 알 수 없다.

 

 

 

 소은병

이 바위 위에는 세모난 구멍이 크게 파여 있어서 빗물이 고이면 바위벽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래서 두 눈이 빠지도록(?) 살펴보았으나 찾지 못했음.  

 

 

 

 

소음병

 

세모난 구멍이 파여 있다는 바로 그 바위

 

 

 

사당

초장 草葬. 시체를 짚으로 싸서 임시로 매장함. 또는 그런 장사.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당

 

사당

 

 

 

 

 

 

 

 

사당 안

 

 

 

 

 

 

 

전사청 

 

 

 

전사청

 

 

 

 

전사청 이리보고 저리보고

 

 

 

 

전사청 안 모습

 

 

 

동와

 

낙서재 위 돌담을 두른 무민당은 조상의 위패를 모신 건물인데 윤선도는 이 무민당에서 잠을 청했다고 한다. 낙서재는 사랑채로, 윤선도가 책을 읽거나 손님을 맞았던 건물로 추정된다. 무민당 아래 작은 초가 건물이 동와로 원래는 서쪽에도 서와가 있었다고 하는데, 혼자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네이버 포스트에서> 

 

 

 

11시 40분                                                                                                       동와

퇴. 툇간에 놓은 마루 = 툇마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부용동 생활. 세상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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