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통영 20-6 <사량섬>

아리1 2019. 1. 28. 19:59

11/6. 가마봉<303미터> 연지봉<295> 옥녀봉<281>. 돈지에서 내지, 대항 등 사량도 북쪽 방면은 나중에. 16시에 나가서 진주를 거처 남해군으로 감. 이글을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사량도에서 삼천포로 바로 갔더라면. 그때는 그리로 가는 뱃길이 있는지조차도 몰랐으니. 

 

 

 

사량도는 해안의 특수성 때문에 수군 전략 요충지로 유서가 깊다. 사량도는 고려 때부터 왜구의 잦은 침범으로 인해 이를 막기 위한 수군 전초기지로 이용되어 왔다. 특히 고려 말에는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진을 설치하고 성을 쌓았다고 전한다. 그 당시 최영 장군이 남해안의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이곳에 진을 치고 왜구를 격퇴한 공을 추모하기 위해 사당이 세워진 것이다. 

조선 시대 1544(중종 39) 4월에 왜인들의 약탈사건 사량진왜변이 일어난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년 61일 저녁에 사량도 하도(양지리 앞바다)에서 군사들을 쉬게 하고 난중일기를 썼으며 62일 지금의 당포 앞바다에서 왜구를 무찔러 당포대승첩을 했다. 난중일기를 보면 계속 사량에서 충무공이 진을 치고 머물렀으며, 사량 만호 이여염과의 접촉은 수차에 걸쳐 이루어졌다<난중일기에 사량이 나오는 횟수가 14회 이상이다>. 

사량도의 진촌 마을에는 객사 터와, 서쪽에는 옥터가 있다. 상도의 동강 건너편 하도의 칠현봉 중 망봉에는 봉화터가 있다. 현재 덕동마을의 옛 지명이 공수리이며, 이 일대의 산을 공수산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가오치 나루에서 사량섬으로

<다음에>

 

 

 

옥녀봉 높이 261미터. 직접 오르지는 않고 남의 것을 갖다 베낀 것 같은데. 실제 높이는 281. 

아래에 나오니 확인을. 아니면 푯말을 고치든가.

 

 

 

13시 10분

 

 

 

 

 

 

 

 

 

가마봉<303미터>

 

 

 

우리나라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라.

 

 

 

가마봉에서 연지봉으로. 3중 계단으로 되어 있음. 오른쪽으로 돌아내려 가는 길이 있을 정도로 가파름.

아래로 보이는 이 계단 끝이 두 번째 계단 시작임.

 

 

 

두 번째 계단. 아래 들마루처럼 된 곳에서 다시 왼쪽으로 내려감.

 

 

 

두 번째 계단

 

 

 

 

 

 

 지금 있는 봉우리 이름이라도 같이 해 놓았으면. 아래에도 나와 있지만 가마봉과 옥녀봉 사이에 있는 연지봉. 이렇게 말이다.

 

 

 

 

연지봉<295미터. 오른쪽에 있는 바위 봉우리> 첫 흔들다리

 

 

 

 

 

 

 

 

 

 

 

 

 

 

 

멀리로는 지리산 다음은 달바위 가장 가까이는 가마봉

 

 

 

 

 

 

연지봉에서 본 동강과 탄금대<바로 아래 나지막하게 튀어나와 있는 곳>

 

 

 

 

 

 

 

 

 

 

 

 

 

 

 

 

 

 

 

 

 

 

 

 

 

 

 

 

 

 

 

 

 

 

 

 

아래 왼쪽 섬과 연결된 섬 같지 않은 섬, 솔미섬

 

 

 

 

 

 

 

 

 

 

 

 

 

 

 

 

 

 

 

 

 

 

 

 

 

 

 

옥녀봉

 

 

 

연지봉에서 대항마을로 내려가는 길

 

 

 

 

 

 

대항마을에서 사량도 나루가 있는 진촌마을로. 맞은편은 고동산 

 

 

 

 

 

 

 

 

 

 

 

 

돌아다 본 연지봉

 

 

 

옥녀봉으로

 

 

 

연지봉을 지나서. 왼쪽으로는 지리산이요, 오른쪽은 달바위.

 

 

 

 

 

 

 

 

 

옥녀봉<281미터>

 

 

 

옥녀봉에 얽힌 이야기

 

 

 

통영팔경의 하나인 사량도 옥녀봉에 내려오는 애절한 전설

 

아주 먼 옛날, 사량도 옥녀봉 아래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다. 이 마을에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옥녀라는 예쁜 여자 아기가 태어났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 어머니는 옥녀를 낳은 뒤 병으로 세상을 등졌고, 아버지마저 슬픔에 잠겨 몸져눕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아버지도 세상을 하직했다. 기구한 운명의 옥녀는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 이웃에 홀로 살던 홀아비가 옥녀를 불쌍히 여겨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이집 저집 다니면서 동냥젖을 얻어 먹이며 잘 보살폈다. 옥녀는 이 사람을 친아버지로 알고 성장했다. 

세월은 흘러 옥녀의 나이가 열여섯이 되자 옥녀는 어여쁜 처녀가 되었다. 그 미모가 아주 뛰어나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다. 이즈음 옥녀를 길렀던 의붓아버지는 마음이 동하여 옥녀를 딸로 보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할 낌새를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옥녀는 그를 친아버지로 알고 있었는데, 슬픔에 잠긴 옥녀는 이러한 위기를 벗어날 묘책을 생각했다. 

"아버지! 제가 간절한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라는 대로 행하시면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드리겠습니다. 내일 새벽 날이 밝기 전에 상복을 입고 멍석을 뒤집어쓴 채, 풀을 뜯는 시늉을 하면서 송아지 울음소리를 내며 저 옥녀봉으로 네발로 기어서 올라오십시오. 그러면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미련한 의붓아버지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답답한 마음에 눈물로 밤을 새운 옥녀는 다음날 새벽에 옥녀봉으로 올라갔다. 인적이 없는 새벽녘에 옥녀봉에 앉아 있는데, 상복을 입고 짐승의 모습을 한 의붓아버지가 벼랑을 기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옥녀는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린 채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열여섯 피지 못한 꽃봉오리 하나가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옥녀봉 밑에는 사철 붉은 이끼가 끼어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옥녀의 피라고 믿고 있다.

지금도 결혼식 때면 옥녀봉이 보이는 곳에서는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지 않는 풍습이 있으며, 신부가 결혼하여 가마를 타고 가다가도 옥녀봉 아래를 지날 때는 걸어서 가는 풍습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나루가 있는 진촌마을로

 

 

 

옥녀봉을 내려가면서

 

 

 

 

 

 

 

 

 

옥녀봉

 

 

 

 

 

 

 

 

 

연지봉 출렁다리 및 사량대교 놓기 앞서 모습. <어느 산악회에서>

 

 

 

고동산

 

 

 

최영장군 사당과 보호 나무

 

왜구를 무찔렀던 최영 장군에게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다. 사당 내부에는 위패가 있고 마부상과 다섯 선녀에 옹위 된 영정이 걸려 있다. 주로 중부지방에서 무속신앙으로 모시는 인물로, 장군의 최후가 그렇듯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위로하고자 하는 원혼 신앙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매년 음력 정월과 섣달에 주민들이 사당제를 지낸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15시 55분. 사량도 나루. 가운데 있는 뫼가 옥녀봉. 16시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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