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고흥 <소록도 3>

아리1 2019. 4. 21. 16:07

3/24. 일.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나라 한센 사업

 

 

 

예로부터 사람들은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왔고 한센병 또한 그들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는 왜놈식 한자어>

 

 

 

한센병이란?

<한센병은 나균으로 일어나며 만성 감염병이다. 증상은 주로 피부의 병변으로 나타나며 심경의 변화를 동반하는 특징이 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권고하는 다체요업(MDT: 리팜피신, 답손, 클로파미진을 함계 사용)으로 치료하면 완치할 수 있다. 윗글에서>

 

 

 

의료선교사

 

 

 

나균

 

 

 

치료사<역사는 왜놈어>

 

 

 

 

 

 

왜의 환센병 정책. 조선 나예방령

 

 

 

1941년 소록도 갱생원 연보

 

 

 

단종과 낙태

 

 

 

벽돌

<정수봉 주민들에게 벽돌지러 갑시다. 아무개 정수봉 벽돌 졌다네>

 

 

 

목도 <죽어도 놓고>

 -두 사람 이상이 짝이 되어, 무거운 물건이나 돌덩이를 얽어맨 밧줄에 몽둥이를 꿰어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 

-목도를 할 때 짐을 걸어서 어깨에 메는 굵은 막대기. =목도채. <표준국어 대사전에서>

* 사진에 있는 돌 모양으로 봐서 지금의 한하운 시가 새겨져 있는 '보리피리' 바로 그 바위가 아닌가 추측된다.

 

 

 

나무 베는 낫

 

 

 

벌목낫

 

 

 

감금실 도면

 

 

 

감금실<1935년. 감금, 금식, 체벌, 강제 노역>과 검시실<1935년. 한센병 발병, 시신 해부, 화장. 이를 '세번의 죽음'이라 불렀다.>

<1941년 무렵에는 매일 5-6회의 해부가 이루어졌다.>

 

 

 

감금실 <실제 감금실은 박물관 밖에 있음>

 

 

 

감금실 안 벽에 쓰인 글<탈출기. 왼쪽>과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으나 짐작은 가는 다섯을 한 묶음으로 한 송곳 같은 쇠붙이로 쓴 수 표시

지금 보이는 건 일곱개 묶음이 그려져 있음

 

 

탈출기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오고 싶어 온 것이 아니다. 병이 들어 온 것이다. 1931년에 소록도에 왔을 때는 ... 그때가 18살이니 한창 장정이었지. 동창리 선창 공사도 했는데 ... 바닷물은 허리에 찬데도 일을 했다. 그 일이 얼마나 크겄냐? 죽도록 일을 했다. ... 맞아서 죽으나 굶어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라고 목을 매 죽는 사람도 매우 많았다. 매달아 죽은 사람의 시신을 구복리? 화장터로 ... 한번 가서 죽은 것은 ... 고향산천 가서 죽지 객지에서는 못 죽겠다는 생각으로 탈출의 기회만 노렸다. ... 중노동도 노동이지만 배고파서 더 못 살겠더라. 시간 시간 ... 시간이 늦어지면 죽는데, 가다가 죽으면 죽고 위험이고 뭐고 생각도 없었다. 없어서 건강자들은 나무를 하러 자주 나갔는데, 나도 사람들에게 삭정이를 꺽으려 ... 길로 내뺐다. 위 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은 ...로 함>

 

*노예, 고대 유럽 노예제 체제에서 노예들 평균 수명 7년.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런 체제가 아니어도, 아래에도 나와 있지만, 여기에도 있는 글을 보면 두말해서 무엇하랴. 고대이든 중세이든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까닭이 한편으론 노예를 잡아 오는 것. 노예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쩌면 위의 글과 똑같은지 그것은 바로 도망이다. 이것이 바로 다음 체제로 넘어가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민주화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 시대 왜구의 침략으로 백성을 버리고 저 몸 혼자 살자고 비는 억수같이 내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야밤에 북으로 도망간 선조. 이는 있어서는 안 될 아주 못된 도망이다. 살인자나 도둑과 아니 말로 할 수 없는 가장 나쁜 도망질이다. 수많은 백성이 죽고 다치고 왜로 끌려가 노예가 되고 심지어는 유럽 상인에까지 팔려 갔다. 이태리로 잡혀간 사람 가운데는 ---안 씨. 쑥국새, 유구 열도<오끼나와> 끌려간 처녀 가운데 고향을 그리워 울다가 죽어 그 혼이 새가 되어 우는 소리가 쑥국쑥국. 지금은 뻐꾹으로 들리는가 보다. 이런 한심한 자를 그것도 임금이랍시고 끝까지 따라다닌 류성룡. 어찌 보면 한심하기도 하다. 

 

 

 

내가 불신자였다면 이 생명 가치 없을 바에는 분노를 기어코 폭발시킬 것이오나

주로 인해 내가 참아야 할 줄 아옵니다.

이 속에서 신경통으로

무지한 고통을 당할 때

하도 괴로워서 이불 껍질을 뜯어

목매달아 죽으려고 했지만

내 주의 위로하시는 은혜로   

참고 살아온 것을 주께 감사하오이다.

 저희들은  반성문을 쓰라고

날마다 요구받았어도

 

 

 

 

 

 

 

 

 

 

 

 

 

감금실 안

 

 

 

 

 

실제 감금실 벽에 걸린 글

 

 

 

1945년 8월 15일. 그러나 그들은 학살, 억압, 차별이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방은 왜놈식 한자어>

 

 

 

세번의 죽음 그 뒤 '네번의 죽음'

 

 

 

우리가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죽음'

 

 

 

광복 바로 뒤

84인 학살사건

1945년 8월부터 1957년 수차례 집단학살

 

그 뒤로도 수많은 사건

 

 

 

84인 학살사건 <1945년 8월 20일>

 

 

 

1947년 '안동 어린이 실종 사건'부터 1991년 '경북 칠곡 개구리 소년 실종 관련 명예훼손 사건'까지

 

 

 

수 많은 한센인의 가슴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

 

 

 

모든 시작은 차별과 오해

 

 

 

 

 

4.6사건<1954. 4. 6일>. 진정서 성명서

 

 

 

4.6사건 <1954년 4월 6일>

 

 

진정서. 성명서

 

 

 

비토리 사건 <1957년 8월 28일. 경남 사천시 서포면 비토섬. 1994년 비토리 섬이 보이는 곳까지 감>

 

 

 

한센인 사건법 <2007년>

 

 

 

돌아온 것은 '공학반대'

 

 

 

 

 

개구리소년 사건 관련 명예훼손

 

 

 

 

 

그때 언론은 한센인들이 암매장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인권침해를 증폭시킨 사실이 아닌 잘못된 보도

 

 

'식당에선 갑자기 밥이 떨어졌다고 하고,

버스에서 쫓겨나고,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가도 곧 쫓겨나요'

 

 

 

얼마 앞 이야기들

 

 

세상의 편견과 이해 부족 때문에

 

 

 

차별과 소외를 겪으며 자란

또 다른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

 

 

 

 

 

당시의 사건을 겪은

한센병 완치자들과 가족들은

아직도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번의 죽음 '발병. 해부. 화장' <아래 사진 배경은 1916년 개원 당시 소록도 자혜의원 본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아픈 진실

 

 

 

 

'네 번째 죽음'

 

더는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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