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제주 18 <다랑쉬오름>

아리1 2017. 11. 21. 23:51

2017. 3/21일. 다랑쉬오름.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마을과 4·3 양민학살사건 다랑쉬굴. 이곳에도 이런 아픔이

 

 

 

10시 35분.                                                                 용눈이오름에서 다랑쉬오름으로. 여유있게 걸어서 한 시간 정도  

 

 

 

저기 보이는 오름은 다랑쉬오름과 바로 마주하고 있는 아끈다랑쉬오름 <아끈은 '작다'라는 뜻으로 작은다랑쉬오름>

 

 

 

 

 

 

다랑쉬오름

 

 

 

이는 용눈이오름

 

 

 

성산일출봉. 다랑쉬오름으로 가면서

 

 

 

다랑쉬오름. 이곳 어디엔가도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용눈이오름

 

 

 

 

 

 

왼쪽 오름이 다랑쉬오름. 밑에 있는 집은 오름 사무소 

 

 

 

-다랑쉬오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표고 382미터. 밑지름 1,000여 미터. 전체 둘레 3,400여 미터. 바깥둘레 1,500여 미터. 깊이 백록담과 비슷한 110여 미터.

다랑쉬마을. 4.3사건. 다랑쉬굴 <아랫글에서>

 

-다랑쉬오름의 ‘다랑’은 높다는 뜻의 고구려어 달(達)과 관련이 있다고도 하며 봉우리가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고 하여 다(ㄷ 밑에 아래아)랑(月郞. 일제강점기부터)이라고 표기했다는 등 여러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다음백과에서>

 

-다랑쉬굴 학살현황에 대해서는 1948년 12월 18일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주민 11명이 희생당한 학살터로, 당시 군경민 합동 토벌대가 수류탄 등을 굴속에 던지며 밖으로 나올 것을 종용했으나, 나가도 죽을 것을 우려한 주민들이 응하지 않자 굴 입구에 연기를 불어넣어 입구를 봉쇄함에 따라 연기에 질식하여 죽은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랑쉬굴 피해에 대해서는 ‘잃어버린 마을’을 조사하던 제주4·3연구소 회원들에 의해 1991년 12월 발견되어 이듬해인 1992년 4월 1일 공개됐고, 11구의 희생자 유해는 45일만인 5월 15일 화장하여 바다에 뿌리고 굴 입구를 콘크리트로 봉쇄조치했다.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는 해발 170m 중산간에 위치한<'위치한'은 왜놈식 한자어라 함. '있는'으로> 마을로 100여년 전 설촌되어 10여가호 40여명이 산디와 메밀, 조 등의 재배 및 우마를 키우며 생활해오다 1948년 11월 경 4·3사건으로 마을이 전소됐다.


‘다랑쉬’란 마을 이름은 마을의 북쪽에 위치하여<'있어'로> 하늬바람<겨울철 북서풍>을 막아주는 다랑쉬오름(382m)이 있어서 붙여진 마을이름일 것이라 한다. <경인투데이뉴스에서>

 

*4·3 당시 바닷가에서부터 5km 밖의 중산간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희생의 대상이 되었다.

 

 

 

 

다랑쉬오름 식생

<아래를 보면 삼나무, 편백나무를 심었다고 나와 있는데 제주도 오름 가운데 유일한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에도 그곳 해설자 말로

분화구에 불이 나서 빨리 자라는 일본산 삼나무를 심었다 함. 한심해도 한참 한심한. 그것도 해설이라고 하는 건지. 

기도 그러니 이곳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하루빨리 캐내고 우리나라 나무로 다시 심으세요.> 

 

 

 

11시 45분.                                                                                   지금 있는 곳. 오름 첫머리

 

 

 

 

위의 알림을 보면 왼쪽부터 지미봉. 우도. 말미오름. 성산일출봉. 은월봉. 대왕산. 대수산봉.

 

바로 앞은 아끈다랑쉬오름<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예로부터 아끈다랑쉬오름이라 불렀다.

'아끈'은 '작은'의 뜻을 가진 말로, 다랑쉬오름의 작은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사람에 따라 아진다랑쉬오름로도 부른다. 아진은 '앉다'의 제주어인 '아지다'의 관형사형이다.

높이 198m, 둘레 1,454m, 면적 164,072㎡, 폭은 487m이며, 모양은 원추형이다.

 

일제 강점기를 비롯하여 광복 후까지도 아끈다랑쉬오름 바로 남쪽에 다랑쉬마을이 있었는데, 제주 4·3 사건으로 폐동되었다.

다랑쉬마을의 한자 차용 표기는 월랑동(月郞洞)이었다. 이곳에 작은 굴이 있었는데, 이것을 다랑쉬굴이라 하였다. <다음 백과에서>

 

 

 

아끈다랑쉬오름 <작은다랑쉬오름. 이 오름은 올라가지 않음>

*'잃어버린 마을'은 다랑쉬오름 남쪽, 다랑쉬굴은 이 오름 남쪽 <다랑쉬 마을과 다랑쉬굴은 다음에 확인할 사항>

 

 

 

 

 

 

다랑쉬오름 둘레 모습

 

 

 

이 오름에서 들을 가로질러 바닷가까지 걸어서 가볼 생각이다

 

 

 

오름 분하구 첫머리. 먼저 오른쪽으로

 

 

 

 

 

 

이 분화구 가장 높은 곳<382.4m>으로 가는 길

 

 

 

아래 오름은 지미봉인 듯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한라산을 만나다

 

 

 

 

 

 

이 오름에서 본 용눈이오름

 

 

 

 

 

 

 

 

 

 

 

 

망곡의 자리

 

 

 

다랑쉬오름이 만들어진 과정<이 알림은 분화구 위에 설치되어 있었음>

다랑쉬오름은 지하 깊은 곳에 있던 마그마가 분화구에서 공중 폭발하면서 분출된 화산쇄설물<화산재. 화산암편>이 주변에 쌓여 만들어진 화산체이다.

이러한 화산을 분석구<噴石丘. scoria cone>라 하며 제주 오름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래에서>

 

 

 

 

다랑쉬오름 분화구

 

 

 

 

 

 

 

 

 

 

 

 

 

 

 

 

 

 

분화구 바닥이 돌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다른 오름과 다르다면 다르다고나 할까.

 

 

 

분화구 안쪽은 깊고 큰 사발 모양. 오른쪽 위 멀리는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분화구

 

 

 

 

 

 

한라산 동부 지역은 오름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곳이다.

그 가운데 다랑쉬오름은 가장 높고 모습이 빼어나서 '오름의 여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오름에 올라서서 한라산을 바라보면 오름 군락은 한라산 앞에 도열한 자식들처럼 보인다. <아래에서>

 

 

 

 

스코리아<scoria>; 용암거품이 대기 가운데서 굳어진 것.

이는 기공<구멍>이 많아 가벼우며 철산화물의 성질에 따라 붉은 색이나 흑색을 띤다.

 

 

 

역시 흐릿한 날씨라 아쉽다. 그건 그렇고 이제 제주도도 슬슬 떠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아끈다랑쉬오름

 

 

 

13시 30분.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 <햇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으나 내용은 위의 것과 비슷함. 11구의 시신 가운데 아이 1명 여성 3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손자봉. 제주로

 

 

 

19시.                                                                                     이번에는 비행기로 하루를 마치다

 

 

 

 

 

*제주 19로